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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馬와 淑女 목마와 숙녀 - 박인희 낭송 , 박인환 시 , 김기웅 작곡

시그널북(루고김) 2016. 8. 10. 08:57

木馬 淑女

       목마와 숙녀

- 박 인희 낭송 , 시 , 김 기웅 작곡 -

 

요절詩人(시인) 朴寅煥(박인환)씨의「木馬(목마)와 淑女(숙녀)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는,
이 시에서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모더니즘 특유의 감수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전후의 절망과 허무를 도시적 감성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떠나가는 모든 것에 대한 애상적(감상적) 정서를 담고 있다.

6․25의 동족 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휘몰아치고 간 폐허에서 불안과 무질서가
난무(亂舞)하는 혼란 속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지새던 50년대 초,
모더니즘의 젊은 시인은 불안 의식과 문명의 위기를 상징적 수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떨쳐 버릴 수 없는 불안과 허무의 시대를 ‘목마’로 표상하였다.
‘가을 속으로 떠나가 버린 목마와 숙녀의 애상과 허무’는 바로 작가의 고뇌이며 동시에

시대적 슬픔이라 할 수 있다.
31 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시인은 시와 술을 벗하며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불안 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지성으로 노래한 우수(憂愁)의 시인이었다. 이 작품 중에서도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등은, 감성적 절규(感性的絶叫)가 풍미(風靡)하던 전후 시대에, 주지적(主知的)·
감각적(感覺的)인 표현을 통해 감상적(感傷的) 정서의 절제(節制)를 보여 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시를 통해 지은이의 짧았던 생애를 떠올려 보고,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엔가 짓눌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나름의 감상적 추측인지도 모르겠으나, 암울한 한 시대의 역사적 소용돌이가
감수성이 예민한 한 젊은 지성을 핥킨 돌이킬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처란
생각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성격 : 주지적, 애상적, 허무적, 감각적, 상징적, 체념적, 감상적
특징 : 산문체이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짐.
         도시적 서정과 보헤미안적 기질이 짙음.
         전후의 허무주의적 색채가 짙음
         의미보다는 분위기 중심의 작품

제재 : 목마(木馬) . 전후의 불안, 절망, 애상의 상징

주제 :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과 허무

구성 : 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화자의 슬픔(1∼11행)

       ② 절망적 현실의 체념적 수용(12∼25행)

       ③ 인생에 대한 감상적 통찰(26∼32행)

 

[어휘와 구절]

♣ 목마 :
   ☞ 떠나가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이 시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매개체이다.
       또한 가벼운 애수와 상실감을 상징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전후의
       허무 의식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별 :
   ☞ 삶의 행로를 밝히는 시대의 좌표와 희망의 상징

 

♣ 가벼웁게 부서진다 :
   ☞ 상실의 이미지, 부정의 현실과 연결되는 표현.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
    ☞ 모든 가치있는 것이 소멸된 전후의 절망적 상황에 대한 표현

 

♣ 늙은 여류작가의 눈 :
   ☞ 삶의 열정을 잃어 버린 작가의 눈. 절망과 비애와 허무의 표출

 

♣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
   ☞ 길잡이가 없는, 즉 삶의 지향성을 상실한 허무와 불안의 시대

♣ 페시미즘 :

    비관주의, 염세주의 (목마의 직접적 의미)

 

♣ 작별하여야 한다, 바라다 보아야 한다.
    기억하여야 한다. 들어야 한다.
     마셔야 한다 :
   ☞ 절망적 현실에서 체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표현을 통해 위장하고 있음.

 

♣ 뱀 :
     ☞통속적인 욕정

 

♣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애상적)가 집약적으로 표현된 부분.

 

 

 

◆ 작품해설


1955년 『박인환 시 선집』에 실린 박인환의 대표작.
전체적으로는 전쟁에 연원을 둔 허무의식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시의 주요 메시지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라는 부분이다.

시의 정조 자체는 떠남과 소멸로 이루어지고,
‘떠나다/ 부서지다/ 보이지 않다/ 작별하다/ 목메어 울다’라는 행위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가치의 상실과 그로 인한 비애로 현실을 인식하는 시인에게 목마와 숙녀의 세계는 비논리의 신화적

세계이다.
목마와 숙녀는 시인이 찾고자 했던 별, 사랑, 문학, 인생 등 삶의 다양한 의미 범주를 포괄하는 은유이다.
지상의 공간을 떠난 목마와 숙녀는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희미한 의식으로 잔해를 남길 뿐이고,

가치를 상실한 시인의 비애는 원죄의 운명과 미끈미끈한 실존을 지닌 뱀으로 표상된다.
천상의 공간에서 방울 소리를 울리는 목마와 지상의 공간에서 무거운 실존을 자궁으로 기어다니는

뱀은 허무주의와 센티멘털리즘에 빠진 시인의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립항이다.
박인환의 허무주의는 전쟁을 통해,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집요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허무주의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죽음에의 평범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그의 모더니즘적 가치는 상식선을 넘지 못하고 어휘의 빈곤, 이미지의 분산, 경박한 겉멋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나 그녀의 작품 「등대로」는 그의 서구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데

시의 전체적 맥락에 연결되지 못하는 낯설음을 준다.
또한 음이나 리듬의 감미로움이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긴 하지만 유창하게 반복하는 경향,

연설조의 문장, 영탄조의 표현, 1인칭어의 빈번한 사용, 독백체의 어투 등은 서정시의 기본 전제인

미적 긴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 박인환 시인

 

   

   

 

 

 

 

 

사진 blog.naver.com/aromatics

 

출생 사망 :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 - 1956년 3월 20일
학력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데뷔 : 1946년 국제신보 시 '거리' 발표경력1952 대한해운공사 입사
         1951 육군 종군 작가단 종군 기자
         1949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간행
         1948 자유신문사 문화부 기자

 

1926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출생했다.
평양 의학 전문학교를 다니다가 8·15 광복을 맞으면서 학업을 중단,
종로 2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9·28 수복 때까지 지하생활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난, 부산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였다.
경향신문사를 거쳐 대한 해운공사 소속 화물선 사무장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1956년 31세의 짧은 나이로 사망했다.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49년 동인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거리」「남품」「지하실」 등을 발표하는 한편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비롯한 많은 영화평을 썼고, 1949년엔 김경린, 김수영 등과 함께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5년 『박인환 시선집』을 간행하였고 그 다음 해인 1956년에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지 20년 후인 1976년에 시집 『목마와 숙녀』가 간행되었다.

혼란한 정국과 전쟁 등의 당대 상황에서 적지 않은 총 173편의 작품을 남기고
타계한 박인환 시인은, 암울한 시대의 절망과 실존적 허무를 피에로의 몸짓으로
대변한 당대의 정신적 제왕이자 모더니즘, 리얼리즘, 실존주의의 시세계를 구축하며
전후 문단의 지평을 넓힌 기린아였다.
전쟁의 충격에 함몰되지 않고 시인다운 세계 인식을 가지려 노력하며 자신이
살아가는 황폐한 시대를 새로운 시 형식으로 반영한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미학과 역사성이 결합하는 접점을 확인시켜 준다.

 

 

 

 

 

■☛ 가수 박 인희

 

 ☟ 아래 이 사진 자세히 보세요..귀 중한 사진 입니다..음악 site에서 가져 왔습니다.

  ▲ 풍문 여중 2학년 시절의 옛 사진


 (아마 4명 중 한 명의 생일에 사진을 찍으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게 아닌가 싶네요)
왼쪽부터 이규민은 우리 반 지휘자였고 지금은 미국에 사는 열심한 친구!
조혜리는 공부를 아주 잘 한 소녀
 (지금은 서울에 살고.....만나기가 어렵지만 언젠가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음)
이명숙(이해인 수녀님)양은...약간 내숭형의 문학소녀라고나 할까.....!!
남녀포함 친구들이 제법 많았답니다....
끝으로 '하얀 조가비'를 부른 가수 박인희(춘호)는 우리반 반주자로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소녀였기에 후에 연극도 하고 가수가 되었다고 하여 우리 모두 놀랐답니다.
요즘은 노래를 안 부르지만 아직도 가수 박인희를 좋아하는 분에게 보내려고

찾은 사진 재미도 있기에 여기 두고가니 감상하세요!

 

  

 

 

 

 

 

 

■☛ 작곡가 김기웅

음악 감상할 때 가수는 잘 알지만 작곡가는 잘 모른다.

 

'비둘기집',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의 작곡가 겸 연주인 김기웅


'사각의 링'에서 '오선지 속'으로,
'국가 대표 복싱선수'에서 '한국 대표급 작곡가'로 우뚝 서다.

 

 ▲사진 위) 김기웅 독집 '돈 벌러 가는 길', 1972년.

 ▲사진 아래) 워커힐 악단 시절 내한한 루이 암스트롱과, 1963년.

58년, 미8군쇼단 ‘Make in Whoopy Show'에서 기타리스트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김기웅((金基雄) 선생.

‘국가 대표 복싱선수 출신 작곡가’라는 타이틀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종종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인물로 불과 열다섯 살에 단신 월남, 맨주먹으로 시작해 독학으로 절대음을

익혔을 만큼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이 국가대표 복싱선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작사가 전우, 작곡가 김기웅 콤비의 한 때.


지난해 2006년 7월3일, 고희(古稀)기념으로 제작된 음반, ‘김기웅 작품집 2006’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그의 음악인생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두 장의 CD로 제작된 이 음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고희를 맞아 작곡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이다. 시인 천상병의 시 ‘귀천’을 테마로 작곡,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깊이 있는 가창력이 돋보이는 이 노래를 통해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그의 창작열,

 그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78년, KBS 전속악단장, 그리고 이후 KBS 전속합창단을 맡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아울러 그의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36년, 부유한 개성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기웅씨는 송도중 2학년 때 1.4 후퇴 당시

가족들과 헤어져 단신 월남, 인천에 정착한다. 이후 복싱 일곱체급을 모두 석권했던 당시

복싱 명문고 성북고에 진학, 3학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한 뒤 웰터급 고교 챔피언에까지

오르면서 신흥대(현 경희대 체대)에 특기생으로 발탁된다.


56년 공군에 입대 후 공군대표 복싱선수로 출전, 불행히도 시합 도중 반나절 동안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하지만 이내 극복,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링에 선다.

그러나 60년 로마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다.

이미 큰 부상을 한 번 당했던 선수였기에 관련단체의 정략적 정책에 의해 올림픽출전권을

김기수 선수에게 넘겨줘야 했던 것.


올림픽 진출의 꿈이 좌절된 이후 ‘통금 후 귀가, 12시 기상’이라는 일과가 지극히 일상적이었을

만큼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만난 사람이 고향 선배인 트럼펫 연주자 왕성배씨다.

그의 권유에 따라 음악의 길을 선택한 뒤 직접 ‘코류붕겐’을 구해 독학으로 절대음감을 익힌다.


음악감상실 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던 만큼 음악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

기타리스트로 58년 미8군쇼단 ‘Make in Whoopy Show'를 거치며 점차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

62년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워커힐악단에 전속된다.

그의 인생에 있어 제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워커힐 악단 시절, 아리랑시스터즈와 함께, 1963년.

워커힐악단에 입단, 리듬기타를 맡는 동시에 악단 연주곡과 노래반주 편곡까지 도맡았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악보자료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자료를 귀로 듣고 채보해 만들어야

했음으로 수시로 밤을 새야 했다. 아울러 당시 가수들의 레퍼토리 편곡을 도맡은 탓에

가수들마다 개성 살리기 위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다시 경희대 음대 작곡과

2학년에 편입, 본격적인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때문에 많은 음악을 채보, 분석할 수 있었고

편곡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훗날 국내외가요제에 출품한 그의 작품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스스로 회고한다.

특히 이 무렵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던 가수 위키리와의 만남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한다.

위키리는 당시 인기가수였던 박형준, 유주용, 최희준과 함께 ‘포 클로버스’ 팀을 결성해

활동하는데 이 '포 클로버스(Four Clovers)'는 일종의 ‘따로 또 같이’ 활동했던 팀으로 각자

솔로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때에 따라 함께 공연과 음반을 발표했던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

 

▲전우 작사-김기웅 작곡 콤비의 데뷔작, ‘포클로버스’ 음반들.

모두 ‘미8군 출신가수’이자 ‘학사가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 멤버들이 이때 발표하는

첫 음반이 ‘포클로버스 & 봉봉/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다.

이 음반에는 그밖에 ‘종이배(위키리)’, ‘그리운 별아(최희준)’, ‘나 홀로 있어도(박형준)’,

‘그대는 오시지 않네(유주용)’, 그리고 ‘까만 눈동자 그 아가씨(봉봉)’등이 수록되었다.

말하자면 이 음반이 작곡가 김기웅의 첫 데뷔작품집이다. 아울러 이 음반을 통해 작사가

전우(본명 전승우), 위키리(본명 이한필), 남성 4중창단 봉봉이 한꺼번에 대중들 앞에 첫

등장한다.

이들 포클로버스는 67년 ‘포 클로버스 2집’을 발표하는데 이들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 역시

모두가 전우-김기웅의 콤비의 작품들이다. ‘산마을(박형준)’ ‘별빛속의 러브레터(최희준)’

등이 담겨 있는 이 음반은 이른바 ‘워커힐 스타일’로 편곡되었기 때문에 현과 관악기의

리듬섹션이 너무 강해 좋은 곡들이 상당히 가려진 아쉬움을 준다.

속칭 'KS마크(경기고-서울대 출신)'라 불리던 인텔리, 작사가 전우 선생은 가수 위키리의

경기고 동창. 특히 작곡가 김기웅씨와는 36년생 동갑내기로 함께 콤비를 이뤄 ‘비둘기집’,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 등 특히 목가적이고 밝은 소리를 지향하는 진보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이어 라디오 드라마 ‘지각한 신부(김상희)’, 영화주제가 ‘국경 없는 밤거리(배호)’,

‘거리의 말괄량이(이금희)’ 등으로 점차 두각을 나타낸 후 69년, 월남에서 돌아와 컴백한

‘왕손가수’ 이석을 위해 만들어 건네준 곡이 바로 ‘비둘기집’과 ‘두마음’.

매번 편곡을 해줘도 악보를 곧잘 잊어버리기로 유명한 이석은 정작 ‘비둘기집’의 음반 취입

 당시 LA에 가 있는 바람에 결국 이 노래는 남성듀엣 투에이스(오승근, 홍순백)에 의해 먼저

취입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노래가 투에이스의 데뷔곡이 된 셈. 이때 ‘황혼길(이찬)’,

‘길(조영남)’, ‘고향(정우)’ 등의 노래도 함께 발표되었다.

‘비둘기집’은 발표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한 노래. 때마침 ‘건전가요 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씨가 진행하던 ‘다함께 노래 부르기’ 공개방송프로 ‘삼천만의 합창’의 시그널 곡으로

채택됨과 동시에 '새마을 합창 경연대회'의 지정곡으로 선정되면서 이내 삼천만의

국민가요로 자리한다.

현재까지도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리어지는 이 노래의 노래비는 87년 타계한 작사가

전우선생의 묘 앞에 추모비로 세워져 있다.

 

 

 

70년, 공군군악대 교관으로 임관된 김기웅씨는 이후 70년대 통기타시대에 들어

‘하얀 눈길(이연실), '인어이야기(허림)'에 이어 박인환 시를 낭송한 '목마와 숙녀(박인희)',

72년 신인상을 수상하는 가수 정미조의 ‘그리운 생각’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어 TBC 재즈페스티벌에서 입상한 이미배의 ‘밤하늘’, 김용호 시에 곡을 붙인

‘담배(서유석)’와 고띠에의 시를 노래한 ‘지다 남은 잎새(윤희정)’, '봄이 오는 길(박인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아울러 이 무렵인 72년, 박건호 작사 '돈 벌러 가는 길'을

직접 노래를 취입해 발표한다.

이밖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요(정소녀, 최병걸), DBS 라디오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제가인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리라(윤희정)’을 발표했다. 이렇듯 60년대 위키리, 봉봉,

투에이스, 이찬에 이어 70년대 이연실, 정미조, 이미배, 허림 등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데뷔한 가수들이다.

 

 

특히 74년,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박경희)’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참가하는 제5회 YAMAHA 동경가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열린

세계국제가요제에 잇달아 입상하는 저력을 발휘한다.

77년 MBC 제1회 서울가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다시 만날 날’, 그리고 78년, 제7회

동경가요제 동상을 수상하는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박경희)’에 이어 제8회

동경세계가요제에서 가창상을 수상한 '아 사랑아(정미조)' 역시 그의 음악성이 한껏

발휘된 작품들.

78년 KBS 악단장을 맡으며 드라마, 영화음악에도 몰두, 한층 작곡 영역을 넓혀 활동한다.

대표작들이 KBS 대하드라마 ’풍운‘, ‘개국’, ‘새벽’을 비롯해 당시 완성도 높은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TV 문학관의 ‘등신불’, ‘전우’, ‘바닷가 소년’, ‘남과 북’, ‘13세 소년’ 등이

그것. 아울러 MBC 특집극 ‘천둥소리’, ‘딸아’, ‘추억 만들기’, ‘그 겨울의 긴 계곡’,

주말드라마 ‘유산’ 그리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의 체조음악, 전국체전 매스게임

음악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 고희를 맞아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곡을 붙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는 최근 유영애의 시에 곡을 붙인 ‘어머니의 괴얄띠‘를 완성,

여전히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음악작곡가협회 고문이자 서울 압구정동 소망교회에서 장로 겸 음악부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기웅 선생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활발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만들어야 할 생활노래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함없는 지론 하나, ‘정직한 노래는 닫혀버린 마음의 문을 다시 열게 한다.’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Copyrights ⓒ 韓國歌謠作家協會報 2007.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