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명] 중장년층이라면 요즘 같은 봄의 길목에서 지금 들으시는 이 노래 기억이 새로울 겁니다. ‘봄이 오는 길’의 가수 박인희 씨가 35년 만에 국내무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모닥불’, 그리고 시 낭송집 ‘목마와 숙녀’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남겼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많은 팬들이 박인희 씨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포크 1세대이자 싱어송라이터로서 7~80년대 감성을 노래한 가수 박인희 씨를 지금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희] 네, 안녕하세요.
[홍지명] 저도 7~80년대 박인희 씨의 노래를 즐겨들은 사람인데 그 맑고 차분하게 감기는 목소리 참 반갑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박인희] 조금 알려진 대로 그동안에는 미국에서 쭉 생활을 했고요. 한 2~3주 전에 도착해서 노래 연습도 좀 했고요. 그리고 오니까 너무들 반가워해주셔서 스케줄도 좀 소화를 했고요. 며칠 전 지난 토요일에는 저를 기다려주신 분들 중에 팬 여러분들이 모임을 가지셨어요. 그래서 잠깐 얼굴 비추고 그분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오늘은 또 날씨가 추워서 홍 선생님 전화 기다리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홍지명] 그러셨군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목소리가 여전하십니다. 35년 만에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 조금 두렵지는 않으셨는지요?
[박인희] 조금이 아니라 많이 두렵죠. 제가 생각해도 아무래도 일을 저지르지 않았나, 이 나이에 재조명을 받고 컴백한다는 사실조차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너무 많이 긴장되고 떨리고 그렇죠.
[홍지명] 다시 노래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박인희] 계기라면 제가 20대 전성기 때 한 1~2년 활동하고 미련 없이 노래는 접었던 것이었기 때문에요. 제가 살아가면서 제 인생 중반이든 아니면 노년이 된 지금이든 다시 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전혀 계획도 없었고 꿈도 없었어요. 그런데 완전히 노래에서는 떠난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미국에서도 그렇고 들려오는 소식들도 그렇고 까마득하게 잊었을 줄 알았던 많은 분들이 저를 기억해주시고 또 그분들이 기억을 해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돌아와서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요청들을 많이 하셔서, 제가 할 수 있을까 많이 두려웠어요. 그랬는데 이제쯤 그 결심이 구체화돼서 하게 됐습니다.
[홍지명] 갑자기 무대를 떠나시고 소식이 없어서 많은 분들이 사실 근황과 안부를 많이 궁금해 했거든요? 같이 활동했던 동료가수들마저 소식을 모른다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까지 돌곤 했습니다. 35년 간 무대에서는 떨어져있었지만 듣기로는 그동안에도 작사·작곡 꾸준히 해오시면서 아마도 노래를 쓰고 부른다는 것, 박인희 씨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희] 한 단어로 지금 숙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제가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 말씀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스스로 그만해야 되겠다고 미련 없이 던지고 갔던 거였는데요. 살아오면서 제 안에 음악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 등과 관계없이 살면서 곡이 만들어지고 가사가 쓰이고 이래서 이걸 언제 발표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제 삶의 일부처럼 그냥 그렇게 만들어왔던 거였는데요. 이제 다시 등장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지금 말씀해주셨듯이 그게 아마 숙명이었나 보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홍지명] 30여 년 만에 어쩌면 다시 음악계 또는 무대로 돌아와 보니까 한참 활동할 때, 그 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다르시죠? 어떤 느낌을 받으십니까?
[박인희] 네, 많이 달라졌어요. 저희들의 경우에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불렀었고 제 경우에는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후배들이 전문화됐다고 할까요? 실용음악과도 생기고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로 음악에 필요한 기초부터 공부를 했고 그 꿈을 현실화해서 이어가고 있고, 그러다보니 실력들이 예전에 저희들 활동할 때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들 잘 하고 있어요. 많이 놀랐습니다.
[홍지명]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봄이 오는 길’ 짧게 듣기는 했지만 사실 안 계시는 동안에도 라디오를 통해서 박인희 씨의 많은 히트곡들이 계속 흘러나왔거든요? 최근에 7080 음악들이 하나의 음악적 조류로 재조명되기는 하지만 과거에 박인희 씨의 노래를 기억하는 분들뿐 아니라 새로운 팬들, 젊은 팬들도 많이 늘었는데 이런 점들 혹시 실감하십니까?
[박인희]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것은 제가 기억을 하고 있고요. 젊은 분들은 아마 제 이름조차 모르지 않을까, 어쩌다 라디오에서 잠깐 노래가 나오면 누구 노래지 하면서 부모님 세대에게 여쭤보거나 그런 정도였으리라고 제가 짐작을 했었는데요. 그게 조금 놀라웠던 것이 대물림이라고 할까요, 부모님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집에서라든가 녹음해서 듣는다든가 해서 젊은 세대들도 많이 기억을 하고 있고요. 돌아와서 제가 모자 푹 눌러쓰고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거나 하면 제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인줄 모르고 그 식당 안에서 라디오를 통해서나 아니면 다운을 받아서 노래들이 나와서 겸연쩍기도 하고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냥 나오기도 하고 그래요. 감사하죠.
[홍지명] 최근에 저희 KBS 2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의 녹화를 마친 걸로 압니다만, ‘모닥불’, ‘끝이 없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이 노래들을 젊은 가수들이 재해석해서 다시 불렀을 텐데 자기 노래를 젊은 사람들이 부르는 걸 보니까 소감이 어떠십니까?
[박인희] 눈물이 날 만큼 감격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연령으로 볼 때 노래를 들었었을까, 너무 어렸거나 아니면 잘 기억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요즘에 여러 매체 같은 것이 발달돼서 그런지 노래를 제가 불렀던 것과는 다르게 젊은 감성에 맞게 새롭게 편곡을 해서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열심히들 부르는 것을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KBS에게 너무 감사한 것이, 제가 노래활동은 20대에 끝났습니다만 90년대 말까지 MC나 DJ활동은 간간히, 또 미국에 간 이후에도 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KBS에서 방송을 하고 해서 저에게는 사실 KBS가 친정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렇게 큰 마당을 펼쳐주셔서 후배들에게 그런 기회도 주시고 저도 또 옛날을 되돌아보면서 반성도 하고 각오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홍지명] 가수이시면서 시집과 수필집을 낸 문인이시기도 한데, 특히 70년대 큰 사랑을 받은 ‘목마와 숙녀’ 같은 시 낭송집을 낼 정도로 노래 안에 문학적인 감수성, 문학적인 표현을 담으셨는데, 요즘 우리 젊은 가수들 많이 칭찬해주셨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으시죠? 어떻게 보세요?
[박인희] 그게 조금 저희들과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 외람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많이 감각적이라고 할까요? 노랫말이라든가 멜로디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서 이제 큰 차이점이라면 저희 세대가 불렀던 노래들은 오래오래 세월을 두고 마음속에 남아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요즘 노래들은 쉽게 표현해서 한 방에 팍 뜬다고 할까요? 멜로디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정말 잊히지 않게 팍 오는데, 새롭게 그런 노래들이 자꾸 나오고 하니까 노래가 쉽게 히트가 되는 반면 또 금방 잊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홍지명]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노래들이 방방 뜨는 분위기라면 박인희 씨 노래는 아까 말씀대로 커피 한 잔 하면서 차분하게 명상에 잠길 수 있는 노래들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다시 무대로 돌아오셨는데 어떤 노래, 어떤 음악으로 앞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싶으신지요?
[박인희] 저는 꾸준히 35년 동안 활동을 안 하고 공백상태에 있긴 했습니다만, 제 노래가 삶 따로 노래 따로가 아니고요. 그냥 제가 침묵기였긴 하지만 살아오면서 만들어졌던 제 나름의 곡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노래들은 20대 때 부른 노래들과는 조금 다르게, 제가 늙어가는 모습과 함께 노래들도 같이, 예전에 젊을 때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같이 자라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홍지명] 알겠습니다. 다음 달 컴백콘서트 준비하고 계신데, 가수 송창식 씨가 게스트로 함께 한다고 하고요.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 계속 들려주시길 바라면서 오늘 이만 인사드려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박인희] 네, 감사합니다.
[홍지명] 35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가수 박인희 씨였습니다.
박인희-홍지명입니다(KBS제1라디오.2016.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