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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인희(1946~?)< 봄이 오는 길>[ 첨부: 1991년 사진및 근황(?)]

시그널북(루고김) 2016. 1. 30. 17:01

 

 

*위는 LA Times(1991년)에 게재된 박인희(당시 45세)의 사진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봄이 오는 길 - 박인희

*조붓한:"조금 좁은 듯한"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넘어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넘어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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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후배 가수)와  미국 체류 중(?)인 가수 박인희와의 통화 내용(2005.11.14)

*김정식(1956~): 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파리 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아래는 daum의 "박인희 팬 카페"에서 옮긴 것임

cafe.daum.net/withparkinhee

 

 

2005년 11월 14일.
이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읍니다.
그 동안 우리 회원님들께서 그토록 간절히 열망하시던 박인희님과 전화 통화를 1시간 했읍니다.
대화 내용은 간추린 것임을 밝힙니다. [후배 가수 김정식의 기술]


<로제:Roger= 김정식을 가리킴>: 인희 누나 지금 어디 계세요?
<박인희>: LA 에 살고 있어요.


<로제>: 1984 년 봄에 동생(함지박)과 함께 여의도 KBS 에서 만나 오랜동안 이야기하고 누나가 <난다랑>에 가서

점심 사 주셨고, 그 때 녹음중이시던 시낭송 음반 녹음을 끝내고 나서 내 곡으로 음반작업을 하자고 해 놓으시고서

20 년 만에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박인희>: 그랬나요? 미안해요. 그 동안 어려움이 많았어요.

 

 

<로제>: 왜 그렇게 연락이 없으셨어요?
<박인희>: 거의 모든 일에서 떠나 있었어요. 아프신 어머니 간병만 하고 살았고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나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잊혀진 줄 알았지요. 그 동안 나는 간병인으로서만 살아 왔거든요.


 

<로제>: 잊혀질 리가 있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나의 노래를 아끼고 사랑하는데요. 해인이 누나(수녀님)

와 혜숙이 누나랑 함께 있을 때 면 자주 인희 누나 얘기 했어요.
올 여름에도 함께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고비사막 한 가운데서 혜숙이 누나가 인희 누나 얘기를 했었어요.

며칠 전에 인희 꿈을 꾸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꼭 전화가 온다더라구요. 그러더니 정말로 지난 7월 중순에 서로 통화를

했었잖아요.
<박인희>: 그래요. 오늘도 통화했는데 혜숙이와 해인이 둘 다 내 꿈을 꾸었다잖아요. 그런데 김정식씨 까지 이렇게

함께 만나게 되었으니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네요.

 

<로제>: 우리가 모두 함께 부산에서 이틀을 지냈거든요. 해인이 누나 회갑을 겸해서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

30주년 행사를 했어요.
<박인희>: 나는 해인 수녀가 그렇게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는 것도 잘 몰랐다니까요.

 


 

<로제>: 그러기에 서로 연락을 잘 하시고 사세요. 이제 인희 누나도 46년 생이시면 내년에 환갑이잖아요.

서로가 외로워지는 나이예요.
<박인희>: 앞으로는 그럴거예요. 그런데 혜숙이에게 들으니 내가 한 번도 안 나타났는데도 팬클럽이 있고 300 명의

회원이 있다는데,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일이예요. 3만 명 아니 30 만명 보다 훨씬 소중하고 아름다운 분들

아니겠어요? 언젠가 찾아 뵙고 꼭 감사의 뜻을 전할께요.

 

<로제>: 그런데 누나. 노래 하시면 안되요?
<박인희>: . 아직은 제 자신이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준비도 안 되어 있어요. 사실 내가 노래를 한 것은

딱 1년 뿐이었어요.

아이를 갖고 [방랑자]를 녹음 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나는 대부분 노래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그러니까 방송인으로 살아온 셈이지요.

그렇게 30년이 흘러 버렸는데 어떻게 느닷없이 팬클럽 회원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겠어요.

 

<로제>: 누나.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예요. 다시 가수로 음반을 내고 노래를 시작하시라는 거지요. 나나 무스꾸리는

70 이 넘은 나이에 내한 공연을 했고, 저도 50이 넘었지만 년중 200 차례도 넘는 초청행사를 하고 있어요. 또한 나는

인희 누나의 목소리에 잘 맞는 노래를 많이 만들어서 지니고 있어요. 언제든지 마음이 정해지면 시작해 보세요.

누나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박인희>: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글쎄요. 내가 노래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고 내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부르게 할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아마도 그 동안 만들어 놓으신 노래들이 있으신 것 같았음)

 

<로제>: 태환이는 잘 있어요?
<박인희>: 어떻게 내 아들 이름까지 알고 있어요?

<로제>: 제가 가끔씩 두 분을 위해 기도해요. 군대 간 것 까지는 알고 있구요.
<박인희>: 기억해 주어서 고마워요. 태환이는 변호사가 되어서 동부에 가 있어요.

 

 

<로제>: 아 그래요. 참 잘 되었네요.
<박인희>: 우리는 참 인연이 깊네요. 이런 일들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애요.

 

<로제>: 그래서 제가 이런 일을 글로 썼어요.[필연적 우연]이라구요
<박인희>: 그래요. 앞으로는 잘 연락하고 지내기로 해요. 나도 팬클럽 회원들에게 음악적으로나 또 다른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정식씨를 통해서 전할께요.

그 대신에 제 마음이 정리될 때 까지는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지는 말아주세요.

별다른 뜻은 없어요. 한국이나 이 곳에서나 누구하고도 연락을 안 하고 지내왔는데 갑자기 공개되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로제>: 그래요. 저는 늘 아무리 좋은 일도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편이예요.

누나 말대로 할께요. 그 대신 노래를 하시는 문제는 잘 생각해 보시고 누나에게 그런 목소리와 재능을 주신

그 분을 위해 하셔야 될 일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세요. 저도 자주 기도할께요.
<박인희>: 제 뜻을 잘 이해해 주어서 고마워요. 당분간은 혜숙이와 해인 수녀, 그리고 정식씨하고만 연락을 할께요.

내가 정식씨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필요한 일이나 팬클럽 회원님들께 전해드릴 말들을 알려 드릴께요. 정식씨도

언제든지 전화해 주시고, 내가 못 받으면 응답기에 녹음해 두세요. 반드시 리턴콜을 할께요.

 

 

<로제>: 그래요. 누나. 저를 믿으시고 평안히 건강하게 잘 계세요. 제가 미국을 자주 가니까 그 때 뵙고 자세한 얘기

더 나누도록 할께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