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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를 찾아서<上,下>중에서

시그널북(루고김) 2016. 8. 11. 20:08

국내 첫 라디오방송인 일제 강점기의 경성방송이 미군정으로 넘어가 호출부호 HLKA의 KBS로 바뀐 지 칠순이 가깝다. 민방이 생긴 건 올해가 52년째. 라디오방송에서의 팝음악은 60년대 초 주1회 KBS ‘리듬 퍼레이드(이진섭-이호로)’가 고작이었는데, 그나마 샹송이나 라틴뮤직 수준. 기독교방송(CBS)의 음악은 역사가 더 깊지만, 클래식 위주여서 팬은 역시 한정돼 있었다.

 

  그러다가 62년 MBC 라디오의 ‘한밤의 음악편지(임국희)’가 사상 처음 팝 리퀘스트의 문을 연다. 다음해 동아방송(DBS)의 ‘탑튠쇼(최동욱)’, 이어 문화방송(MBC)이 ‘탑 튠 퍼레이드(이종환)’로 맞불을 놓았다. 64년 개국한 첫 민방 라디오 서울(TBC)은 달콤한 목소리의 성우 피세영(피천득씨 아들)을 내세워 ‘뮤직 텔스타’로 이른바 트로이카 시대에 들어간다.

 

  기독교방송도 질세라 ‘영 847’을 만들어 추격에 나섰지만, 65년 FM방송이 전파를 발사하면서 심야방송의 판도가 달라진다. 당시 민방의 낮방송은 2시에 끝났다. 그러나 동아방송(DBS)이 체신부의 허가를 받아 파격적으로 ‘3시의 다이얼’을 만들어 최동욱(이어 박인희)의 전화 리퀘스트에 대성공, 전화국 휴스가 끊어질 정도로 애청자들의 다이얼링 경쟁이 벌어져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팝 리퀘스트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66년 여름이었던가. 필자가 옛날식 다방에서 방송 음악프로를 듣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퀴즈문제가 나왔는데, 알고 보니 생방송이었다. 음악을 듣고 제목을 아시는 분은 전화를 걸어달라는 거였다. 58년 작 할리우드 뮤지컬영화 <남태평양>의 주제가인 ‘어느 황홀한 저녁(Some Enchanted Evening)’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계속 번호를 알려주면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마침 가까운 곳에 빨간 공중전화통이 보였다. 얼른 동전을 넣고 떨리는 손으로 방송에서 불러주는 번호의 다이얼을 돌렸다. 따르릉하는 신호음이 다방 전축을 통해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나보다 더 놀란 건 종업원들과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 “여보세요”하며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누구세요?” 하더니 대뜸 제목을 말하란다. ‘어느 황홀한 오후’라고 대답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맞은 걸로 해드리죠” 했다.

 

  ‘저녁(Evening)’을 ‘오후’라고 했으니 원칙적으론 틀렸지만 그냥 봐준다는 뜻이다. 노래제목의 우리말 번역이 중구난방이어서, 마니아들은 대체로 노래제목을 영어로만 기억하던 시절이다. 당시엔 라디오도 전축(주로 독수리 표)으로 들었다. 레코드판이 없으니 음악방송 땐 아예 전축으로 ‘생중계’한다. 다방이나 빵집엔 근사한 전축이 떡 버티고 있었다.

 

  방송국에 찾아와 이름을 대면 소정의 선물을 주겠다고 해서 인사동 어딘가를 물어물어 찾아가 신분증을 보여주자 영화 개봉관입장권 두 장을 내준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영화 개봉관을 돈 내고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이었는데, 극장도 영화제목도 또 어느 방송국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TBC, MBC도 낯 시간대(Dead Hour)에 활기를 불어넣어 팝 리퀘스트의 황금시간대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단골이었고 직장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청취율싸움은 다시 심야로 옮겨진다. MBC에서 이종환을 끌어다가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에 앉혔다. 그러자 DBC는 최동욱, 이장희, 윤형주를 잇달아 내세우며 ‘O시의 다이얼’로 승부수를 걸었다.

 

  이어 동양라디오(TBC)는 아나운서 황인용에게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독교방송(CBS)은 ‘끔과 음악사이(임문일)’로 심야시간대의 팝 프로그램 각축전이 벌어진다.

“역사는 민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라는 한 구절 때문에 금서(禁書)로 묶였던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라고 했다. 그렇다.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면 잠시 과거로 돌아가 추억 속에서 오묘한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흘러간 음악의 경우 더욱 훌륭한 ‘가교(Over-bridge)’가 될 것 같다.

 

  FM라디오 인기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의 시그널뮤직은 푸르셀(Frank Pourcel)의 <머쉬, 쉐리(Merci Cherie)>. ‘머쉬, 쉐리’는 프랑스어로 “고마워, 내 사랑”이라는 뜻이리라. ‘쉐리(Cherie)’는 프랑스인 자주 쓰는 애칭인데, 여기서는 ‘내 사랑’ 쯤으로 보면 될까.

 



Merci, merci, merci

F?r die Stunden, Cherie, Cherie, Cherie

Uns're Liebe war sch?n, so sch?n

 

고마워요, 고마워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

우리의 사랑은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고마웠어요.

 

  원래는 1966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싱어 송 라이터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우도 위르겐(Udo J?rgens)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독일어로 불러 1위를 한 칸초네의 오리지널 버전. 그러나 프랑스의 귀재(鬼才) 푸르셀 오케스트라 연주곡이 원곡보다 훨씬 유명해져,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이후로 꾸준히 애청되고 있는 곡이다.

 

  프랑스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푸르셀은 ‘프랑크 푸르셀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무드음악계의 제1인자로 손꼽혔다. 마르세유 출신인 그는, 음악의 명문 파리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마르세유오페라극장의 악단 단원으로 일한 바 있다. 영화 주제음악 <사랑에 지다(Morir de Amor) 또는 ‘죽어도 좋아’>도 푸르셀의 대표작 중 하나다. http://www.youtube.com/watch?v=p_7IdMQffUc

 

  60년대에 음악감상실에서 틀어주는 팝송의 인기순위는 빌보드차트나 방송국의 그것과는 무관할 때가 많았다.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가 뮤지컬 영화 <틴에이지 스토리(Teenage’s Story)>에서 주연하며 부른 <디 영 원스(The Young ones)>는 그리 주목받지 못한 노래다. 그러나 국내 뮤직홀의 인기 DJ 한분이 개인적으로 선호하여 자주 틀어 히트시킨 곡. <노노레타(Non ho l’eta)>, <라노비아(La Novia)> 다 거기서 거기다.

 

  가사를 외우기가 쉽거나 동일한 단어가 반복되는 노래도 선호도가 높았다. 카네기홀에서 최초로 팝음악을 불러 화제가 됐던 하리 벨라폰테의 <마틸다(Matilda)>, 레이 피터슨의 <아이 러브 코리나(I Love Corina)>, <비 밥 어 룰라(Be-Bop-A-Lula)> 등은 누구나 흥에 겨워 한 두 소절쯤 외우고 다녔다.

 

  아무래도 인기는 영화 주제음악이 선풍적이었다. 니노 로타(Nino Rota)의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OST는 영화가 들어오기 전부터 유행을 탔고, 들어와 ‘완전범죄 조장’이라는 명목으로 상영이 금지되자 절정에 올랐다. 영화<자이언트(Giant)>, <셰인(Shane)>은  지금도 마니아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5~60년대엔 누가 뭐래도 주한 유엔군사령부방송(VUNC)이나 주한미군방송(AFKN)의 라디오 음악편성이 국내 팝음악 보급에 지대한 기여를 했던 건 사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