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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 박인희(가수)

시그널북(루고김) 2016. 8. 11. 20:09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 박인희(가수)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아방송의「3시의 다이얼」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1972년,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방송이 끝난 후 현관 앞을 마악 나서는데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복도의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추운 겨울 날 그는 외투도 입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첫인상이 몹씨 추워 보였다.
『안녕하세요. 박인희 씨.』
첫만남이지만 그 목소리는 서먹서먹하지 않고 구김살이 없었다.
『 제가 글을 쓰고 제 친구가 작곡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곁에 있는 친구를 나에게 소개했다. 역시 모르는 청년이었다.
『고맙습니다. 예고도 없이 오셔서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시느라고 몹씨 추우셨을 텐데… 따끈한 차나 한잔 마시면서 얘길 하지요. 』
방송국 앞에 있는 조그만 찻집에서 그 두 청년은 두 사람의 작품을 담은 악보들을 내게 주었다. 뜨거운 커피 내음을 마음으로 마시며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해 보니 기성 작사가에게 느낄 수 없는 진솔함이 있었다.
『이 노래들은 처음부터 박인희씨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드실지…』
『시도, 곡도, 마음에 들어요. 그러나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는지요?』  
『레코드 취입을 부탁합니다. 아버님께 말씀드려 사업에 대한 모든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랍니다. 문제는 박인희 씨의 승낙 뿐입니다.』
작곡을 했다는 청년이 말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무어라 확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악보를 집에 가서 차근차근 좀더 살펴보고 취입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어요. 우선은 무엇보다 작품이 좋아야 하니까요. 또 아무리 작품이 좋다고 해도 제가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그것도 미지수고… 』
차를 마시며 그들이 나에게 준 시집 한권을 뒤적였다. 겉 표지가 빨간 시집이었던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박인희씨가 「뚜와 에 무와」로 노래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름에 비해 듀엣으로 노래했던 「뚜와 에 무와(Toi et Moi)」 시절은 활동 기간이 1년도 채 되지 못했다. 젊은 날 내게 찾아온 열병으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내출혈을 지혈시키기 위해 거머쥔 것이 기타 한 대였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의 귀라고 소리쳤던 어느 이발사의 부르짖음 대신, 기타라는 나무 등걸에 소리 죽여 울던 나의 속울음. 「약속」, 「스카브로우의 추억」,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불과 몇 달 동안 넉장의 독집 레코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노래가 전부였던 삶. 노래 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 타성이 기어왔다.
어느덧 내 이름 석자 뒤에는 괄호가 따라 다녔다. 조그만 내 이름 박인희일 때는 자유로운 삶이, 괄호 속에 「가수」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자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강요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바추어지는 나, 추측이라는 도마 위에서 난자당하는 나, 그러한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인기인, 유명인이라는 이름 뒤에는 내면의 붕괴가 컸다.

─ 내가 언제 빵 한 조각을 위해 노래했던가.
─ 아니다.
─ 스타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던가.
─ 아니다.
─ 그럼, 왜 노래를 불렀나.
─ 노래가 좋아서, 그냥 부르고 싶어서. 부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처음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나 갈채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영원히 살아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 지금도 그런가.
그 생각은 날이 갈 수록 더해.
이 다음에, 어느 먼 훗날에 누군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며 문득 쓸쓸해질 때, 그 어둑어둑한 삶의 저녁 길을 걸어가며 어쩐지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가슴에 슬며시 떠오르는 노래…
「그래, 어쩌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의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 그래서 조금 쯤 쓸쓸함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노래, 한 곡이라도 좋으니 나는 그런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이야.  

그 무렵 나의 내면의 소리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서고 싶지 않은 자리는 절대로 서지 않았다. 은퇴라는 말은 함부로 떠올리는 말이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피흘리는 진통을 겪되,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바엔 침묵이 더 좋지 않은가. 침묵이 무능으로 안주되지 않기 위해선 내면을 후비는 시간의 끌과 정(釘)은 되도록 날카로와야 한다.
그 무렵 나를 아껴주는 프로듀서들과 레코드 회사에선 적극적으로 나에게 솔로 활동을 권유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작곡가들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나는 다시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 침묵기에 두 청년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차를 마시며 무심코 넘겨 보던 시집 한권, 몇 장을 넘기다가 눈길이 머문 시구가 있었다.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눈으로 시를 읽었으나 그 순간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이미 예전부터 내가 잘 알고 있는 노레처럼.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다시 그 시들을 읽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선 바로 조금 전 처음으로 시를 읽었을 때처럼 똑같은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다시 읽어봐도 똑같은 멜로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음절도 막힘없이 샘솟는 멜로디… 조금 전 이 멜로디가 어떠했더라 하는 착각같은 것은 전연 들지도 않았으므로, 멜로디끼리 서로 부딪침 없이, 생각끼리 서로 부딛침 없이, 하나의 노래가 솟아오른 것이다.
두 청년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며칠을 기다렸다. 하나의 멜로디가 포도주처럼 잘 익기를, 만약에 며칠 동안 잊지 않고 그 멜로디가 가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준다면, 나는 그 노래를 부르리라. 그리고 소망처럼 그 멜로디는 내 가슴에 남아 나의 노래 「모닥불」 이 되었다.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의 마음 속에서 흐르던 멜로디 그대로, 덧붙일 것도, 떼어낼 것도 없이 오선지에 악보를 그렸다.